(얼굴사진) 김동인 발행인
적토마는 명마의 상징이다. 병오년 말의 해를 맞아 붉은 명마, 적토마가 시흥에서 소환되고 있다.
토끼처럼 빠르면서 하루 천 리를 달린다는 묘사는 과장이지만, 실존과 전설의 경계에서 적토마는 언제나 ‘능력은 있으나 아직 쓰임을 만나지 못한 존재’를 뜻해 왔다.
그래서 적토마의 가치는 말의 능력보다, 그것을 알아보고 쓰는 사람의 안목에서 완성돼왔다.
적토마에 얽힌 고사 가운데 매사마골은 지금도 유효하다.
죽은 명마의 뼈를 큰 값에 사들이자, 천하의 명마가 구름처럼 모여들었다는 이야기의 핵심은 보상 그 자체가 아니라 태도다.
인재를 찾겠다는 분명한 신호, 인재를 존중하겠다는 결단이 있을 때 숨은 적토마는 스스로 길을 찾는다.
또 하나의 고사인 백락의 이야기는 더 직설적이다.
수많은 군마 가운데 적토마를 가려내는 눈, 즉 백락의 혜안이 있어야 적토마는 제자리를 찾는다.
능력은 사실로 존재하지만, 기정사실이 되기까지는 알아보는 주체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다가오는 2026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시흥의 선택은 이 두 고사를 동시에 요구한다.
공직 후보를 골라내는 정당은 매사마골의 각오로 문을 넓히고, 백락의 기준으로 눈을 날카롭게 해야 한다.
정치혐오라는 장벽 앞에서 인재가 정치를 멀리하는 현실을 탓하기보다, 그 장벽을 낮추는 책임이 어디에 있는지를 먼저 돌아봐야 한다.
공천이 형식이 되면 선거는 소음이 되고, 공천이 내용이 될 때 선거는 해법이 된다.
시흥은 지금 난마처럼 얽힌 만가지 과제를 안고 있다. 재정의 우선순위, 도시의 선택과 집중, 자치의 설명 책임은 한 사람의 구호로 풀리지 않는다.
달릴 말이 아니라, 달리게 할 안목이 필요한 시점이다.
고르디아스의 매듭은 힘으로 끊는 것이 아니라 방향을 바꾸는 결단으로 풀린다.
2026년, 시흥의 선택이 적토마를 부르는 소환술이 아니라, 적토마를 알아보는 혜안이 되기를 바란다.
인재가 숨어드는 도시가 아니라, 인재가 쓰임을 만나는 미래의 도시로 나아가는 선택이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