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선 시흥소방서장
웹서비스 이용, 국민과 직접소통 자율안전관리 토대 마련
소방청은 매년 중앙소방학교 주관으로 119소방정책 컨퍼런스를 개최하고 있다. 이는 1982년부터 소방연구기능 활성화를 통해 소방정책의 발전을 유도하고 현실성 있는 정책을 제시하는 자타공인 소방 최고 권위의 전국 단위 학술논문 연구대회다.
올해로 33회째를 맞이한 컨퍼런스에서 경기도소방재난본부 소속 시흥소방서 연구반이 ‘소방시설 경년변화에 따른 노후도 분석과 화재 안전성 확보를 위한 대응 방안 연구’를 주제로 5개월간의 준비과정을 거쳐 지난 10월 21일 개최된 전국 본선발표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1위를 달성해‘대상’에 입상하며 경기도 최초로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책임연구원으로 이번 연구를 이끈 한선 시흥소방서장을 만나 논문의 기획과 연구과정 그리고 활용성에 대해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 대통령상 수상을 축하드린다. 어떤 의미가 있는지?
119소방정책 컨퍼런스는 소방에서 개최하는 명실상부 최고 권위의 학술대회다. 소방에서 다뤄지는 다양한 정책을 심도 있게 연구하여 소방조직의 변화와 함께 국민 모두가 안전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현실성 있는 정책을 도출하는 것으로 연구된 주제들은 실제 소방정책으로 연결돼 각 분야에서 현실화 된다.
경기도는 2011년과 2013년에 전국대회에서 1위를 차지해 국무총리상을 수상했고 2014년 대통령상으로 격상된 이후 처음으로 우리 시흥소방서가 수상하게 됐다. 경기도 최초 여성소방서장이라는 타이틀로 올 초 많은 주목을 받았는데, 이번에 또 경기도 최초라는 타이틀을 얻게 됐다. 전국에서 지인들이 축하인사를 전해오는데 아직 잘 실감이 나지 않는다.
• 일반인으로서 논문의 제목이 많이 어렵게 느껴진다. 이러한 주제로 연구하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
아마도 논문이라는 형식으로 작성해서 그런 것 같다. 이번 인터뷰로 차차 자세히 설명할 기회가 있을 것 같다. 우리 시흥소방서는 ‘노후’라는 키워드에 주목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모든 사물은 변화하게 되는데 결국 그 끝은 ‘멈춤’일 것이다. 우리의 생명도 언젠가는 멈추게 되고 사물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결국 끝은 멈추고 사라지게 된다. 그 과정은 그저 완만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어떠한 굴곡이 존재하게 될 것이고 그 굴곡에 대한 대처에 따라 멈춤의 시간은 달라질 것이다.
이러한 생각을 소방시설에 적용해보았다. 소방시설은 시간이 지나면서 이물질이 쌓이고 부식하고 결국 기능이 다해 멈추게 될 것이다. 하지만 분명히 급격하게 변하는 변곡점이 있을 것이고 그 시점을 찾아 우리가 잘 대처한다면 소방시설은 우리의 안전을 위해 그 기능을 온전히 수행할 것이라는 확신으로 연구를 시작하게 됐다.
• 연구가 심오한 철학을 담고 있는 것 같다. 그렇다면 구체적인 연구 내용은 무엇인가?
부제를 먼저 언급하면 설명이 쉬울 것 같다. ‘실증실험, 노후 소방시설 유지․관리, 소방안전관리 플랫폼 그리고 안전한 삶’이다. 우리는 수계소화설비 스트레이너, 화재감지기, 발코니형 비상구 등 세 가지 소방시설을 연구 대상으로 삼고 대학교수, 소방기술사 등 관련 전문가들의 자문을 얻어 소방시설이 노후가 되는 경향을 다양한 실증실험을 통해 분석했다.
실험결과 각 시설별로 급격하게 성능이 저하되는 시점을 확인했고 각종 이론과 계산식을 적용해 도출되는 문제와 개선방향에 대해 연구했다. 그 결과 현재 법적근거의 미비로 노후소방시설 유지․관리 사각지대가 있어 관련 법령의 개선안을 제시했고 국민이 자발적으로 노후소방시설의 교체와 보수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플랫폼 서비스를 만들게 됐다.
• 세 가지 소방시설의 노후 경향을 연구하셨다고 했는데, 연구대상으로 선정하게 된 사유는 무엇인가?
국내에서 문헌 수집을 해 봤더니 노후소방시설에 대한 연구나 실험은 거의 찾을 수가 없었다. 배관의 부식 연구로 ‘스프링클러설비의 기능에 이상이 있을 수 있다’라는 정도만 확인할 수 있었다. 그래서 소방시설 자체를 하나하나 살펴보며 소외됐지만 큰 문제를 야기할 수 있는 부분을 체크하다보니 처음 눈에 띈 것이 스트레이너였다. 스트레이너는 소방펌프 부속품으로 수조의 물이 소화배관으로 넘어갈 때 이물질을 제거해주는 것이다. 스트레이너에는 여과망이 있는데 이 부분이 이물질로 막히게 되면 소방펌프 본연의 성능에 큰 지장을 초래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하지만 아직 스트레이너의 점검과 관리에 대한 규정은 미비했고 눈에 띄는 곳에 위치하고 있지 않아 소방관들 조차도 크게 관심을 두지 않는 부분이었다.
화재감지기는 일반인들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소방시설로 화재가 발생하면 연기나 열로 화재를 감지해 경보음을 내게 해주는 화재와 가장 가까이하는 소방시설이다. 이러한 화재감지기는 노후가 되면 내부 부식으로 인해 감지성능의 저하가 오게 되고 이는 건물 안에 있는 사람이 화재를 늦게 알게 되고 그만큼 대피가 늦어지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발코니형 비상구는 지상 2층에서 4층 사이 일반음식점, 유흥주점 등 다중이용업소 영업장 외부에 설치하는 피난시설로 올해 3월 시흥시 정왕동에서 발코니에 올라간 외국인 3명이 추락하며 1명이 사망하고 2명이 중상을 당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그 간 발코니 사고는 음주 등 부주의에 의한 사고였지만 최근 들어 발코니 부식과 관련한 추락사고가 발생하는 경향이 있어 연구 대상으로 선정하였다.
• 연구가 진행되면서 실험 또는 다른 이유로 어려운 점은 있었는지?
올 여름은 유래를 찾아보기 힘들만큼 무더웠다. 에어컨도 없는 펌프실에 들어가 노후로 탈착이 잘 안 되는 스트레이너와 두 시간 이상 씨름하며 실험도 하고, 기간별 화재감지기 샘플을 확보하기 위해 36개 건물을 방문하여 화재감지기 수거와 교체도 하고 화재감지기 제작업체를 방문하며 다양한 실험도 하는 등 무더위에도 굉장히 바쁘게 움직였다. 하지만 실험을 할 수 있는 건 그나마 다행이었다.
발코니 같은 경우 시료를 채취해 1년 이상 경과를 관찰해야 하는데 시간적 제약 때문에 진행 할 수가 없어 대체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구슬땀을 흘렸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국민과의 소통을 위한 플랫폼을 제작했어야 했는데 전문성이 부족한 소방관으로서 진행하기가 매우 힘들었다. 다행히도 카이스트 전산학부 학생의 도움으로 우리가 원하던 플랫폼을 제작하게 됐다.
• 안전관리 플랫폼에 대해 간단히 설명을 해준다면?
우리가 만든 플랫폼의 공식 명칭은 ‘Go~! 치유(治癒)’다. 웹 기반인 플랫폼 서비스에 접속(Go~!)해서 노후로 아파하는 소방시설을 ‘치유(治癒)’하자는 의미로 지었다. 더불어 고장 난 소방시설을 빨리 ‘고치유~’라는 위트도 담았다.
고치유 서비스는 건물의 사용승인일만 알면 건물에 설치된 소방시설의 일반적인 노후 경향을 시각적으로 볼 수 있는 플랫폼이다. 우리가 실험한 데이터를 근거로 실제 일정시간 경과된 건물의 소방시설을 해체해 사진자료를 확보하고 그룹화 했다. 자신의 건물을 검색하면 노후 사진과 함께 노후로 인해 도출되는 증상과 문제점을 알 수 있고, 그 시점에서 조치해야 할 일을 알려주게 된다. 이를 누구나 볼 수 있고 경각심이 생겨 자신의 건물에 설치된 소방시설에 관심을 가지고 개선할 수 있는 역할을 한다. 실제로 시흥 관내 한 중학교를 대상으로 안전컨설팅을 진행했고 즉시 교체하는 결과를 얻었다.
고치유서비스는 현재 베타버전으로 향후 다양한 정보를 보강해 실제 시흥소방서에서 안전컨설팅, 자체점검 등에서 소방관, 소방시설관리업체, 건물 안전관리자가 함께 사용하며 소방시설을 개선할 수 있는 중요한 매개체로 활용할 계획이다.
• 마지막으로 시민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게 있다면?
시흥소방서는 오직 하나만을 생각했다. 그건 바로 시민의 안전한 삶, 행복한 삶의 유지였다. 사실 이번 연구를 통해 대통령상을 수상했지만 그 보다 더 큰 행복은 우리가 연구했던 것이 조만간 하나하나의 정책이 될 것이고 그러한 정책들이 시민 모두가 안전해지는 삶의 터전을 만드는 것에 도움을 줄 것이라는 기대감이다.
무조건적인 의무의 부과가 아닌 함께 소통하고 같이 개선하는 시민과 소방의 동행이 우리가 생각하고 바라는 길이었다. 우리 소방은 언제나 시민의 안전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이런 우리를 시민은 변함없는 지지와 신뢰로 믿음을 주시길 바란다. 시민의 지지와 신뢰야 말로 우리가 어려운 역경을 헤쳐 나갈 수 있는 큰 동력이 된다.
이제 화재위험이 높아지는 겨울철로 접어들었다. 이에 따라 매년 11월부터 소방은 겨울철 소방안전종합대책을 수립해 시행하고 있다.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해 시민이 안전할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할 것이다. 시민 분들에게는 단 한 가지만 당부 드린다.
“올 겨울 안전하시라!”